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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부서진 낙원 8화 : 칼브람 용병단(1)

로엔베르트
댓글: 1 개
조회: 2186
2011-04-03 21:43:45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바윗덩이가 발에 매인 채 이그나흐 강에 던져지기라도 한 듯이 초고속으로 하강하는 분위기는 도저히 되살릴 방법이 없어보였다. 전 날에 있었던 가슴 아픈 기억. 여신의 이름으로 이 마을을 지켜주었던 수호거미의 죽음은 마을 전체에 먹구름을 불러왔고, 미쳐버린 수호거미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놀의 화살을 맞은 칼브람 용병단의 단장은 아직도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못한 채 병상에 누워있었다. 칼브람 용병단원들은 모두 용병단 본채에 모여 단장에 대한 걱정과 수호거미의 발광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개중에는 이번 거대거미와의 전투에서 눈에 띄는 공을 세운 피오나조도 졸린 눈으로 탁자에 모여 앉아 있었다. 사실상 부단장격인 마렉이 아이단의 방에서 나오자, 피오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단장님은?”

“열도 내리고 있고, 상처부위도 깨끗이 나았어. 이제 일어나시길 기다리면 될 거야.”

“다행이군.”

 

마렉은 ‘한 숨 돌려도 괜찮겠다.’며 단원들을 진정시켰다. 실제로도 아이단의 상태는 빠르게 호전되고 있었다. 화살에 맞은 부위가 벌겋게 부어오르고 몸에서 열이 펄펄 끓던 어제와 다르게 화살을 빼낸 상처부위는 급속도로 아물고 있었고, 지독한 독감에라도 걸린 듯 40도에 육박하던 열도 서서히 내려가고 있었다. 소식을 접한 단원들은 그제야 안도하며 하나 둘 본채를 빠져나갔고, 피오나 조를 제외한 모든 인원이 나가자 마렉도 의자에 앉았다. 잠시간의 침묵.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무 말 없이 이어지는 정적을 깬 것은 두 어번의 노크 소리였다.

 

-똑똑

 

“들어오세요.”

 

단원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대충 청소하던 케아라가 붉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용병단 문이 열리고, 금발 머리의 소녀가 들어왔다. 마을의 무녀는 어딘지 모르게 화가 난 표정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피오나조가 앉아있는 테이블을 향했다.

 

“티이 언니, 여긴 어쩐 일이야?”

“카이 씨. 잠시 얘기 좀 해요.”

 

무거운 분위기에 테이블에 턱을 박고 무료하게 시간을 때우던 이비가 티이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티이는 이비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카이의 레몬색 눈을 응시했다. 카이는 살짝 눈웃음을 짓더니 이내 티이의 손을 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이디께서 부르신다면 언제든지.”

“과분한 친절이로군요.”

 

티이와 카이가 본채를 나선 후에, 이비는 다시 테이블에 턱을 박고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피오나는 케아라가 타 준 차를 조금씩 마시고 있었고, 리시타는 턱을 괜 채 단도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단원용 의자가 너무 작아서 특수 제작한 전용 의자에 앉은 카록은 그만의 무거운 자세와 표정으로 조용히 잠을 청하고 있었다. 뭐 하나 특이 할 것이 하나도 없는 평범한 일상. 어제의 일이 환상이나 환영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것은 멀리 보이는 무너진 종탑의 실루엣과 목재와 돌덩이들을 나르는 인부들의 힘찬 구호 소리뿐이었다. 눈이 그친 하늘에 가벼운 구름이 떠가듯, 느릿느릿 흘러가는 시간은 뜬구름처럼 아무 기척 없이 지나갔다.

 

 

 

“발리스타를 쏘라고 명령한 것. 당신이었죠?”

 

용병단 건물 뒤편, 카이를 끌고 온 티이는 카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카이의 키는 티이보다 얼굴 하나 정도는 컸으므로, 티이는 고개를 들고 대화할 수밖에 없었다. 카이는 뒷목을 긁으며 난처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내 조준이 살짝 엉성하긴 했지? 어쩐지 많이 빗나가더라.”

“카이 씨.”

“혹시 맞을 뻔 했다면 미안해. 하지만 여기 이렇게 살아 있잖아?”

“카이 씨.”

“야... 정말 위험했지. 머리에서 마족의 징표가 빛나는 거대거미라니. 다신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단 말이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짜악!

 

혼자 으스대며 떠들던 카이는 갑자기 시점이 90도 꺾이자 당황한 듯 말을 멈췄다. 화악. 뺨 한쪽이 얼얼한 것이 아무래도 이 작은 소녀가 손으로 붉은 도장이라도 찍은 모양이었다. 자신의 턱 아래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금발의 소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친구였어요.”

“알아.”

 

카이는 붉게 부어오르는 왼쪽 뺨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속에서는 ‘뭔 계집애 손이 이렇게 아파’라며 툴툴거렸지만, 울먹거리는 무녀의 표정이 맘에 걸렸는지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엄청 친하게 지냈어요.”

“그것도 알아.”

“그런데 그 친구를 당신이 죽여 버렸어요.”

“미안.”

 

카이는 자신이 말해 놓고도 너무나 매정한 자신의 말투에 놀라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티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카이의 옷깃을 붙잡고는 주저앉았다.

 

“나도 알아요. 벤샤르트가 만약 발리스타를 맞지 않았더라면 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런데 왜?’라는 의문이 뇌리를 스쳐갔다. 카이는 도저히 마족의 징표를 머리에 매단 동물과 인간 사이에서 무녀라 칭송받는 이 소녀 사이에 어떻게 ‘친구’라는 관계가 성립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는 대충 이 관계를 ‘동네 꼬마와 그의 친애하는 애완견’ 정도의 관계로 이해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애완동물이 자신을 대신하여 죽은 것’에 대해 이정도로 성을 내고, ‘애완동물이 대신해서 죽지 않았다면 자신이 죽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슴을 쓸어내리기보다 죄책감에 휩싸이는 이 조그마한 소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얼굴 양 옆에 길게 뻗어있는 종족의 상징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그는 숲의 종족, 조화를 추구하는 종족, 자연의 요정 등으로 불리는 엘프다. 인간과는 다른 종족이고, 인간이 코볼트들의 습성을 이해하지 못하듯 그의 종족 또한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그 가슴 시릴 만큼 냉랭하고 잔인하리만치 이기적인 논리가 맘에 들지 않았다. 카이는 자신의 옷깃을 붙잡고 옷깃이 축 늘어질 만큼 눈물을 흘리는 무녀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왠지 자신이 길을 잘못 선택한 것만 같은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벌써 두 번이나 말했다. 이번 사건은 왕국 기사단이 조사할 것이다.”

 

금발에 베레모를 눌러 쓴, 딱딱한 인상의 여기사가 말했다. 어조가 단조롭고 사무적인 것이, 기사단 내부에서는 촉망받는 엘리트일 것만 같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나무늘보가 친구하자며 손 내밀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었던 용병단이 이리도 소란스러워진 데에는 이 도도한 여기사가 끌고 온 한 무리의 왕국 기사단 때문이었다. 오자마자 지난날에 있었던 거대 거미 사건을 들쑤시려는 기사단을 보며 정작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생사를 걸었던 대다수의 용병들은 가까스로 분노를 삼키며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치열한 눈빛싸움. 바이저 사이로 보이는 휘황찬란한 기사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정결하고 질서 있었고, 그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운 활동을 지향하는 칼브람 용병단원들의 눈빛은 들짐승처럼 거칠고 무질서했다. 명령조로 나오는 여기사에게 말로써 대항하고 있는 사람은 부단장인 마렉이었다.

 

“죄송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겠습니다.”

 

상대방의 격식 있는 어조가 맘에 안 들었는지 마렉은 그를 흉내 내며 말했다. 용병단원들에게서 웃음소리

가 새어나왔지만, 대화를 하는 둘은 신경 쓸 일 아니라는 듯 다시 둘만의 싸움으로 돌아갔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흥, 우리가 로체스트에 지원 요청을 했을 때는 코웃음만 치더니…….”

 

마렉이 첫마디를 내뱉자, 그 동안 햇볕이나 쐬며 실내 일광욕을 즐기던 이비가 졸린 목소리로 물었다.

 

“지원 요청?”

“우리만으로는 버거울 것 같아서 미리 전갈을 보내뒀는데, 이 겁쟁이들 하는 꼬락서니를 보라지, 결국 나와서 칼을 휘두른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이게 손에 부스러기 안 묻히고 쿠키 먹겠단 소리랑 뭐가 달라.”

“말이 심하군. 병사.”

 

여기사는 마렉의 말이 신경 쓰였는지 대화 사이로 끼어들었다. 100명도 안되는 마을의 일개 용병이 왕국의 기사단을 비꼬는 것 자체가 이미 심각한 모욕이었지만, 여기사 스스로도 마렉의 말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하겠는지 차마 면전에 대고 치욕이라며 체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남는 것은 밑도 끝도 없이 상대를 헐뜯는 설전 뿐.

 

“이런 시골의 용병이 알 턱이 없지만 로체스트에서 군령이란 것은 아래로부터의 보고, 위로부터의 명령, 아래에서의 시행이 기본 철칙이다.”

“아하. 그렇다면 고귀하신 윗분들이 이런 거대한 사건을 두고 ‘뭣들 하느냐. 그 거대한 요물을 어서 처치하라!’라고 지엄한 명령을 내렸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겁니까? 아니면 백성들의 안위를 생각해야 할 윗분들께서 그 피둥피둥한 손가락으로 펜을 잡기 어려워 ‘요물 퇴치’라는 간단한 명령서조차 작성하지 못하신 겁니까?”

“그건……!”

 

마렉의 말 중 어떤 것이 맞을지는 아는 사람이면 다 알겠지만, 이 중에서 딱 두 가지 확실한 것은 마렉이 말한 사실을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말하는 자는 마렉 한명 뿐이라는 것이었다. 알고 있는 것과 알면서도 몰라야만 하는 것. 여기사는 알면서도 입을 다물어야 하는 이 빌어먹을 정신 고문에 괴로워하며 말을 줄였다.

 

“예예. 이런 헌납하는 세금도 적고 특산물이라고는 이가 시려서 한 모금 삼키기도 힘든 차디찬 딸기술 밖에 없는 작은 촌구석 따위 금화를 깔고 사는 나리들께는 그저 지도 위에 점으로만 보이겠지요.”

“그래도 조사는…….”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이 일에 왕국 기사단이 끼어들 여유는 아무데도 없단 말입니다!”

“시끄럽군! 병사. 어서 단장을 불러오도록! 이 용병단은 단장이 아니라 한낱 조무래기가 기사를 상대하나!”

 

억지다. 여기사는 이를 악물고 이 병신 같은 모순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버텼다. 이 모순을 인정하는 순간 그동안 기사로써 긍지로 쌓아온 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수 미터를 솟아오른 거대한 물의 벽 앞에 쓰러지는 모래성과 같이 눈 깜빡할 사이에 와르르. 아니면 기사로써 반드시 지키겠다고 다짐해온 신념이라는 작품이 진실이라는 검은 물감에 더럽혀질지도 모른다. 알면서도 바보처럼, 보이면서도 장님처럼, 들리면서도 귀머거리처럼, 말할 수 있으면서도 벙어리처럼.

 

“모실 수 없습니다.”

“……. 그대는 어디까지 왕국의 기사를 모욕해야…….”

“용병단엔 용병단의 규칙이 있습니다. 기사모욕이고 자시고 저희에겐 기사들의 규칙을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 병상에 누워계시는 분을 불러올 수는 없단 말입니다!”

 

마렉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단장씩이나 되는 자가 겨우 그 정도 전투에 상처를 입다니…….”

“겁먹은 꼬맹이들 마냥 뒤에서 손가락 쪽쪽 빨며 강 건너 불구경 한 주제에 아직도 할 말이 남으셨습니까? 참으로 뻔뻔하십니다!”

 

마렉이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목소리로 외쳤다. 진격 나팔만큼이나 큰 목소리로 용병단 내를 쩌렁쩌렁하게 울린 그의 분노는 날 것 그대로 여기사를 향했다. 여기사 뒤쪽에 있던 다수의 기사들이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 마렉에게 달려들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당사자인 여기사는 이 엄청난 모욕을 받았음에도 천천히 심호흡을 한번 하더니 손을 뻗어 뒤에서 대기 중이던 기사들을 밖으로 물렸다. 기사들이 다 빠져나갔음을 확인한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그대를 이해할 수 없다.”

 

여기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기사고, 그대가 용병이기 때문이겠지.”

 

마렉은 무서운 눈초리로 여기사를 바라보았고, 여기사 또한 마렉을 노려보았다.

 

“따라서 그대도 날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네. 그렇습니다. 전 당신을, 기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기사는 베레모를 꾹 눌러쓰며 말했다.

 

“내 이름은 드윈이다. 그리고 그대들이 겪은 이 사건에 진심으로 애도를 표하는 바이다. 지금 이 순간의 나는 기사도 용병도 아니다. 이제 나를, 드윈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Lv30 로엔베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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