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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부서진 낙원 7화 : 거대 거미(2)

로엔베르트
댓글: 1 개
조회: 1792
2011-03-21 01:00:43

 

“네 이름이 벤샤르트라며? 내 이름은 티이야. 친하게 지내자”

 

처음 만난 그 날. 고개를 쳐들어야 힘겹게 눈을 마주 할 수 있었던 그 시절. 발이 어딘지 몰라 복슬복슬한 두 갈래 턱을 만지며 건넸던 인사말. 작은 손으로 쓰다듬을 때 마다 그르릉 거리던 커다란 친구. 그녀가 점점 자라고 여성스러워질 때, 단 한 뼘도 자라지 않은 의리 있는…….

 

-키에에엑

 

검게 번뜩이는 철창. 인간이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어금니를 몸에 박고 머리에 새겨진 뜨겁고 붉은, 하지만 시궁창 속에 내팽개쳐진 것처럼 불쾌한 징표를 새긴 그는 반 쯤 미쳐있었다. 괴로움을 한껏 담아 울어도 들어줄 사람 하나 없는 곳. 그의 네 쌍의 눈에 비친 그 것. 긴 금발에 큰 눈을 가진 옛 친구와 그녀의 눈에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진주보다 굵은 눈물을 대면했을 때, 그는 더 이상 미쳐있을 수 없었다. 머리에서 불쾌하게 타오르던 징표가 사그라진다. 처음 만났을 때, 지금보다 더 작았던 그녀를 지켜주겠다 마음먹었다. 그녀의 주위 사람들을 지켜주고자 마음먹었다. 그리고 작은 마을의 수호수가 되었다. 그리고 미쳐버렸다.

 

지금 자신의 마음을 저 작은 소녀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하지만 소녀는 그의 생각이 들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한심한 성대에게 실망했다. 명확한 의사소통 능력을 내려주지 않은 여신에게 절망했다. 자신의 다리가 여덟 개인 것이 미웠고, 자신의 눈이 여덟 개인 것을 저주했다.

 

-키에에에엑

 

구슬픈 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또 다른 쇠창살들이 하늘을 뒤엎었다.

 

“티이 언니! 어서 종탑 안으로 들어가요! 이러다가 우리까지 맞겠어요!”

 

이비는 ‘우리까지 저 무식한 무기에 꿰여야 성이 풀리시나요? 카이 오라버니야?’라는 생각을 되풀이하며 티이의 팔을 끌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운 좋게도 벽에 붙어있거나 알아서 대피한 상태인지라 자신과 금발의 무녀만 어떻게 피하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돌처럼 굳어서 이대로 거대거미가 정신 차리기를 기다리려고 작정한 건지 티이는 절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언니! 꺄악!”

 

이비가 멈춰버린 티이를 강제로라도 끌고 가려는 찰나, 언제고 하늘에 고정 되어 있을 것만 같았던 새까만 쇳덩어리들이 자신들을 향해 급강하 했다. 그 모습은 마치 수십 미터 상공에서 작은 토끼를 보고 매섭게 달려드는 날카로운 눈매의 독수리 떼…….

 

“에이이! 그딴 설명 집어 치워! 언니! 어서 피해요!”

“안 돼! 난 저 아이와 함께 있겠어.”

 

‘죽여 버리겠어! 카이! 죽여 버리겠어! 카이! 죽여 버리겠어! 카이이이이!’이비는 필사적으로 카이를 저주하며 티이의 앞을 막아섰다. 쏟아지는 검은 빗줄기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마나를 모으던 이비는 순식간에 시야를 가려버린 거대한 거미의 몸집을 보며 사고회로가 멈춰버렸다. 압사라도 시켜버릴 요량인지 거대한 몸을 똑바로 세운 거대거미. 이비는 이 미쳐버린 거미가 자신들과 동반자살이라도 하려는 건 아닐까라는 터무니없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상상을 하며 티이를 껴안았다.

 

눈을 감는 순간 들려오는 끔찍한 소리. 꽃게를 씹어 먹는 소리를 백만 배 쯤 확대하면 비슷해질까? 단단한 껍질을 뚫는 소리와 그 안에 있는 연한 속살이 송두리째 뚫리는 소리, 그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진득한 액체의 지저분한 분사음. 하나만 들어도 귀를 막고 싶은 끔찍한 소리들이 괴상망측한 하모니를 이루며 이비의 고막을 긁었다.

 

“어……?”

 

저 거미의 밥이 되던, 발리스타에 맞아 곤죽이 되던 더 이상 살 수는 없을 것 같았던 이비는 천천히 눈을 떴고, 혹시 자신이 특이 체질이라 창을 맞고도 살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과대망상 탓에 자신의 몸을 샅샅이 확인한 후에야 살아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물론 그 뒤로는 안도감에 다리가 풀려 자리에 고꾸라져버렸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 있는 거……?”

 

옆에서 정신을 잃은 채 자신에게 기대어 있는 티이를 보며 이비는 중얼거렸다. 거대거미가 덮치고, 무식한 창이 날아드는 몇 초 전 상황을 몇 번을 돌려 생각해봐도 당최 이렇게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다리 한 두 개 쯤은 잃어야 지극히 정상인 상황. 이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티이를 흔들어 깨웠다.

 

“언니, 언니! 일어나 봐요! 언니! 우리 살았어요! 우리 살았다고! 에이이잇! 저주할 테다 카이!”

 

천천히 눈을 뜬 티이는 이비의 호들갑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그르릉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사근사근한 울림. 흔히 오랜 시간 지낸 애완동물이나 낼 법한 울림이 티이와 이비에게 전해졌다. 익숙한 소리에 티이는 고개를 돌렸고, 마족의 징표가 말끔히 사라진 거대 거미는 멀뚱하게 서 있는 옛 친구에게 아래턱을 내밀었다. 온 몸에 그 끔찍한 쇳덩이가 세 개나 박혀 있었다. 그 사이로 누런 진액이 간헐적으로 뿜어졌고, 숨 쉬는 것 조차 벅차 보이는 거미는 가까스로 친구에게 인사를 건넸다. 티이는 두 손으로 거미의 아래턱을 쓰다듬었다. 달래듯 쓰다듬는 그녀의 손은 주사를 잘 맞은 꼬마 아이를 달래는 간호사의 손보다도 따스해 보였다. 거미는 또다시 그르릉 거리는 애교 섞인 목소리를 내며 티이의 위로에 화답했다. 미녀와 야수라는 옛 이야기보다 감동적이고 더 충격적인 그림이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이비의 눈가엔 어느새 눈물이 맺혀있었다.

 

-끼이이익

“언니.”

“응? 왜 이비야?”

 

어느새 밝아진 표정으로 이비에게 대답한 티이는 이비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서 말을 잃었다. 종탑의 꼭대기에 위태롭게 걸려있는 커다란 종. 빗나간 철창이 쇠종이 있는 방의 벽을 부순 것 같았다. 썩어가는 나무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그 종은 지나가던 나비가 사뿐히 앉아도 떨어질 만큼 위태로웠다. 티이는 사색이 되어 거대거미에게 말했다.

 

“벤, 벤샤르트, 어서 내려가자, 응? 여긴 위험해.”

 

티이는 작은 몸으로 거대거미의 큰 턱을 잡아었지만 거대거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하지 말라는 듯 커다란 앞발로 티이의 등을 몇 번 쓸어준 그는, 갑자기 티이와 이비를 크게 밀쳐냈다. 난데없는 공격에 이비는 몇 번을 구르다 겨우 자세를 잡고 빠르게 마법을 캐스팅 하려 했으나, 뚝 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진 종탑을 굴러 내려오는 쇳덩이에게 시선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비와 티이에겐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만 같았다. 종이 모든 벽과 나무 뼈대를 갈아버리고, 무너트리고, 부숴버리며 굴러 떨어졌다. 천천히, 하늘에서 내리는 눈보다도 더 천천히, 툭 튀어나온 벽을 밟고 도약하여 또 다시 천천히 하강하는 그것은, 움직이지 못하는 한 돌연변이 절지동물의 위를 향했다. 거대 거미는 여덟 개의 눈동자에 점점 거대해지는 쇳덩이를 담았고, 그의 단단한 몸뚱이는 커다랗고 무거운 쇠종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점잖은 모습으로. 자신의 친구가 오래 슬퍼하지 않도록.

 

“안 돼!!!!!!”

 

구르고 굴러 떨어지는 쇳덩이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힘이 다 빠져버린 마을의 수호수를 깔아뭉갰다. 하얀 몸뚱이 아래로 흘러나오는 붉은 혈액. 거대거미의 왼쪽 마지막 다리는 발리스타에 완전히 꿰어 땅에 박힌 상태였다. 수 톤은 가뿐히 젖혀버릴 듯 묵직한 종은 그 막대한 중량으로 거대거미를 짓눌렀다. 거미가 밀어내준 덕에 그 참사에서 피할 수 있었던 이비와 티이. 티이는 찌그러져버린 자신의 친구에게 달려가며 절규했다.

 

“제발, 흑, 제발…….”

 

티이는 꿈쩍도 하지 않는 종을 어깨로 밀어보고, 두 손으로 밀어보고 탕탕 쳐보기도 했지만, 바뀌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이 엄청난 흉기가 친구의 숨을 빼앗아가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티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티이는 괴로워하고 있는 친구와 눈을 마주했다. 구슬이라도 박힌 듯, 반짝이는 네 쌍의 눈에 티이의 모습이 맺혔다.

 

“내가 꺼내줄게. 조금만 참아. 제발…….”

 

이비도 그 모습을 보다 못해 열심히 염력으로 종을 들어보려 했지만, 싸구려 도자기조차 힘겹게 드는 이비에게 이 정도의 중량은 무리였다. 매직 애로우로 옆으로 밀어내려 해도 이 끔찍한 종은 아무렇지도 않은 채 거대거미의 목숨을 앗아갈 뿐이었다. 그르릉 거리는 소리도 점점 약해진다 싶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티이를 비추던 여덟 개의 구슬이 빛을 잃었다.

 

“언니…….”

 

티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물이 강 하나쯤은 단 숨에 채워버릴 정도로 쏟아지려 했지만 티이는 참아냈다. 모든 슬픔을 속으로 삼켰다. 다시 무릎을 꿇고 거대거미의 아래턱을 쓰다듬었다.

 

그 때 쯤, 정신이 돌아온 피오나와 리시타, 카록도 티이의 주위로 돌아와 서 있었다. 비록 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 동안 티이와 거대거미 사이의 관계를 알고 있었던 리시타와 피오나는 이비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카록은 기둥을 수습하는 척 애써 의연하게 서 있었지만, 이 상황에 ‘이제 모두 정리 됏으니 돌아가지’라고 핀잔을 줄 만큼 모질지 못했다. 티이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노래였다. 죽은 자를 애도하는 진혼곡. 쓸쓸하면서도 애절한 레퀴엠이 흘러나왔다.

 

그대 평안히 가세요.

비록 나는 이곳에 남아 있겠지만

그대 그대로 떠나세요.

비록 나는 이곳에서 기다리겠지만

걱정 마요 그대.

기다림은 그다지 지루하지 않답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그대이건만

나는 결코 이 기다림을 멈추지 않을 거에요.

아련한 추억 속 그대를 생각하며

영원히.

 

오늘따라 유난히 바람이 차다.

 

Ep0 : 낡은 종탑 fin.

Lv30 로엔베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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