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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설]부서진 낙원 4화 : 낡은 종탑(2)

로엔베르트
댓글: 2 개
조회: 1700
추천: 1
2011-03-01 20:56:44

 

잠겨 있는 종탑의 문을 몸으로 부수고 들어간 아이단 일행은, 오랫동안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 종탑의 내부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샌 빗물에 썩어 부러진 대들보나 부스스 떨어지는 벽면의 석회가루. 나무공으로 공놀이를 하던 사내아이들이 깨버린 유리창과 한눈에 봐도 떨어지는 것을 막기는커녕 기대자마자 나락의 끝자락으로 인도할 것만 같은 낡은 난간. 아무리 사람의 발길이 끊긴 건축물이라지만 이 정도로 피폐해진 건물이 여태껏 버틴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티이를 보호하라.”

 

이번에도 소란이 일어나면 훈련량을 10배로 늘리겠다. 라고 말하는 아이단의 눈빛. 그 눈빛을 직격으로 맞은 피오나조의 조장 피오나는 ‘……죽겠다.’라고 중얼거리며 조원들과 함께 티이를 감싸며 전진했다. 우든 스태프를 든 ‘신참’ 이비는 피오나가 ‘소란 일으키면 저 아저씨 우리 엄청 굴려 댈거야.’라고 겁을 주자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에에… 그거 많이 힘들어요? 단장님도 브린처럼 잔소리 마구 하시면 싫은데.’라며 투덜거렸다.

 

“응?”

 

아이단은 앞서 걷던 중 갑자기 발에 채인 물건을 보고 눈을 찌푸렸다. 들짐승의 해골처럼 보이는 그것은, 이마 부분에 붉은색의 인장이 번뜩이고 있다는 것만 빼면 단순한 의식용 목걸이처럼 보였다. 정수리 부분에 두 개의 구멍을 뚫고, 그 사이로 가죽 끈을 매듭지어 목걸이로 만드는 것은 몇몇 토테미즘 신앙 구역에서 발견되는 흔하디 흔한 의장용품 중 하나지만, 이마에 그려진 붉은 인장은 가벼이 여길 문제가 아니었다. 이 목걸이를 쥔 아이단의 눈이 커졌다.

 

 

“이건……. 마족의 징표? 이런 것이 왜 여기에…….”

“그게 뭔데요?”

 

이비는 고개를 숙인 채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아이단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이단은 뭔가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치자 빠르게 자신에게 다가온 이비를 안았다.

 

-슈욱

 

공기를 찢는 파공음과 함께 퍽 하는 둔탁한 음이 그 뒤를 따랐다. 다짜고짜 자신을 껴안은 아이단에게 뭐라 소리를 지르려던 이비는 아이단의 등에서 파르르 떨고 있는 화살대를 보자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마렉이 방패로 자신과 아이단을 가리며 외쳤다.

 

“매복이다! 무녀님을 지켜! 대장님! 괜찮으십니까?”

“……. 아이단 대장님?”

 

이비는 자신을 껴안은 채 등에서 피을 흘리는 아이단을 불렀다. 말끝을 올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지금 아이단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힘 없이 떨어지는 그의 오른팔. 이비는 당황하며 외쳤다.

 

“마렉 오빠! 다,단장님이!”

“이런... 의식을 잃으셨어.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화살은 아이단을 맞춘 것도 모자라 계속해서 쏘아졌다. 마렉이 아이단의 상태를 살피는 동안 피오나와 리시타, 카록과 카이는 날아오는 화살을 막으며 무녀와 마렉, 등을 보호했다.

 

“망할! 대체 누구야!”

 

리시타는 양 손에 쥔 롱소드를 계속해서 휘두르며 날아오는 화살을 쳐냈다. 당장 필요한 응급처치를 끝낸 마렉이 다급히 외쳤다.

 

“피오나조는 무녀님을 보호하면서 계속 전진 해! 나는 단장님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겠다.”

“예!”

 

당당하게 대답한 피오나는 방패를 앞세우고 사각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겁에 질린 채 정신줄을 놓고 주저앉아 있는 이비를 제외한 4인의 조원들은 각자 자기가 맡은 적을 착실하게 제거해나갔다.

 

적은 두건을 쓰고 있었다. 하얀 두건 사이로 보이는 갈색 털과 머리는 개, 몸통은 인간의 형상을 지닌 종족. 혹자는 되다만 웨어울프라며 비난하기도 하지만, 지능만큼은 완전히 광폭화한 웨어울프 보다 월등히 높아서 종종 인간과 비교되기도 하는 종족. 놀 종족의 궁수 전사들은 종탑 복도 끝에서 정확히 급소만을 노리며 활을 쏘아 댔다.

 

피오나는 가장 앞에서 활을 쏘고 있던 놀 궁병의 머리를 방패로 쳐내고, 그대로 회전하며 걷어찼다. 하압! 기차화통을 통째로 삼킨 듯 커다란 기합과 함께 벽으로 내동댕이쳐진 운 없는 놀 궁병의 왼쪽 갈비뼈는 특유의 곡선을 유지하지 못하고 으스러졌다. 돌려차기 이후 주춤하는 피오나. 베테랑의 위치에 있는 궁수들이 그녀를 놓칠리 없었다. 놀 궁병 중 한 명은 재빠르게 표적을 변경하여 피오나에게 활을 겨눴으나, 시위를 당기기도 전에 두개골을 꿰뚫은 화살이 사고의 전달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공교롭게도 자신의 머리를 뚫은 화살은 아까 자신이 날린 화살이었다.

 

“거 참, 조잡하다 조잡해.”

 

카이는 땅에 떨어진 놀의 화살을 뽑아 날리며 중얼거렸다. 질 나쁜 나무의 나뭇가지로 얽어 만든 활은 강도도 떨어지지만, 표면이 매끄럽지 않고 곧지 않아 멀리, 그리고 세게 나가기 힘들다. 하지만 카이는 그런 조잡한 활로도 정확히 놀들의 눈이나 두개골, 심장 등을 관통시키는 신기에 가까운 궁술을 선보였다.

 

“후럅!”

 

괴상한 기합을 내지르며 달리던 리시타는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며 전진했다. 그 스스로는 그 스텝을 슬립대시, 연속으로 쓸 땐 슬립스루라고 부른다지만, 정작 보는 사람 입장에선 그저 혼자 촐랑댈 뿐이었다. 허나 효과만큼은 만점이라서 그는 회피와 속도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며 놀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달리던 관성을 그대로 이용한 찌르기!

 

-컹!

 

기습 찌르기에 당한 놀의 얼굴에 두려움이 서렸다. 순식간에 구멍이 뚫린 가슴. 놀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쓰러져버렸다. 찌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활을 겨눈 다른 놀 궁병이라고 다른 점은 없었다. 기회다! 라고 생각하며 리시타를 겨누는 순간, 허리쪽에서 따끔한 통증이 일었다. 그리고 시선이 뒤로 젖혀졌다.

 

-쿵!

 

“퓨리!”

 

몸이 둘로 나뉘어진 놀의 시체가 리시타의 뒤에서 뒹굴었다. 상대에게 치명타를 입히자마자 다른 상대에게 돌진하며 미끄러지듯 마저 그어버리는 기술. 몸이 날쌔면서도 공격에 힘이 있는 리시타이기에 가능한 공격법이었다.

 

이렇듯 시끄럽고 정신없는 리시타의 공격과 달리 카록은 무척이나 진중했다. 근처에 죽어있는 놀의 시체를 들어 날아오는 화살을 막으며 천천히 전진하던 자이언트 족의 전사는 갑자기 들고 있던 놀을 냅다 던져버리며 멍하니 활만 쏘던 궁병 두 세 명을 한방에 넉다운 시켜버렸다. 그리고는 그 광경을 넋빠진 얼굴로 보고 있던 두 놀의 머리채를 잡아 그대로 박수를 쳤다. 다만, 부딪힌 것이 카록의 손(手)가 아니라 놀들의 머리(首)라는 점이 박수소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콰직

 

잔인하게 뇌수가 터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놀의 개과를 닮은 두개골 특성상 이마보다 돌출된 입이 먼저 부딪히며 박살난 송곳니가 사방으로 비산했고, 찢어진 혀가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삽시간에 얼굴의 반쪽이 곤죽이 된 놀들은 그대로 축 늘어진 채 카록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대충 장내가 전부 처리되자. 조원들은 이비와 티이를 중심으로 진을 쳤다. 티이는 이비를 품에 안은 채 천천히 조원들을 따라갔다. 티이에 품에 안긴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비. 역시 갓 성인이 된 소녀에게 이런 광경은 무리였던 것일까. 이비는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저… 이비야, 괜찮아?”

 

리시타가 다가가 이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탁

 

이비는 그런 리시타의 손을 신경질적으로 쳐내며 리시타를 바라보았다. 이비의 여린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잇는 힘껏 인상을 쓰고 리시타를 바라보는 폼이 ‘가까이 오지마’라고 말하는 듯 했다.

 

“이비야…….”

“가까이 오지 마요!”

 

화내는 목소리가 격하게 떨렸다. 리시타는 그때서야 자신의 모습이 처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놀들의 붉은 피로 얼룩진 옷과 뼛조각이 묻은 소매, 가죽조각과 살점으로 뒤덮인 손등. 리시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제 위치로 돌아가 일행들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피오나가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말했다.

 

“확실히……. 나도 이런 짓 하고 싶진 않아.”

 

등 돌린 채 말하는 피오나의 목소리는 진중했다. 무거웠고, 또 무섭게도 가라앉아있었다.

 

“손에 피 묻히는 것은 그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을 거야. 난 성선설을 믿진 않지만, 누군가를 죽인다는 건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 그리고 전장에 선다는 것. 그건 적을 죽여야 하지만 동시에 나 또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속에 있어야 한다는 거야. 인간의 생존본능은 그 어떤 공포보다도 강력해서,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해. 그게 현실이고, 인간의 본성이야.”

 

피오나의 말은 땅을 기듯이 흘러 이비의 마음을 쳤다. 분명 이비는 아까의 광경에 충격을 먹었다.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동료들의 모습이 무서웠다. 아무렇지도 않게 살육을 즐기는 것 같아 무서웠다.

 

‘같이 놀겠네?’ 언젠가 카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것은 단순히 편하게 지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장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일상은 ‘충분히 즐겨줘야 할 여가시간’이었던 것이었다.

매일 말도 안 되는 양의 음식을 입에 밀어 넣으면서도 ‘난 먹은 게 전부 가슴으로 가’라고 웃으며 말하던 피오나의 식습관도,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긴 습관이었다.

 

이비는 이제야 조원들의 표정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그 누구의 얼굴에도 희열이나 광기는 보이질 않았다. 모두의 얼굴에는 피로함과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안도감이 한데 뒤섞여, 왠지 일그러진 표정만이 있을 뿐이었다.

 

“가자.”

“…응 언니.”

 

일행은 걸음을 재촉했다. 밀려드는 놀 베테랑 전사들과 궁병들. 모든 놀 종족을 제거하며 3층 쯤 올라갔을 때, 거대거미의 괴성과 함께 건물이 울렸다. 천장에서 회색 석회가루가 떨어지고, 선반 위에 간신히 올라있던 항아리 등 집기가 와장창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다시 건물이 안정되자, 일행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전진했다. 카이는 연두색 머리 위에 떨어진 잿빛 석회가루를 털어내며 무심코 창 밖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발견했다.

 

‘저건...’

 

종탑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언덕. 그 언덕 꼭대기에 있는 아름드리나무. 카이가 발견한 것은 그 아래에서 막대기 같은 것을 들고 있는 흰색 로브의 생물 두 마리였다. 종족 특성상 청각 뿐 아니라 시각 또한 맹금류에 버금갈 만큼 좋은 카이는 그 생물이 든 지팡이가 옅은 붉은 빛을 뿜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아까 대장이 발견한 ‘마족의 징표’가 오버랩됐다.

 

“피오나 누나. 대충 본대는 다 처리 한 것 같은데 난 이쯤에서 빠져야 할 것 같아.”

“죽는다. 어딜 가려고?”

 

저기, 말의 앞뒤 순서가 바뀌지 않았어? 라는 어처구니없는 푸념은 속으로 삼켜 버린 카이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그게……. 혹시 일이 잘못되면 발리스타를 쏴야 하잖아. 지휘하려면 내려가야지.”

 

순간 티이가 불안한 안색을 보였으나 피오나는 나름대로 카이의 논리가 옳다고 느껴졌는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는 그 특유의 어린애 같은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화답하고는 그 즉시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카이 씨! 그 쪽은!”

 

3층이라고는 하지만 한 층당 높이가 4-5m는 될 정도로 층간 높이가 상당한 건물이다. 게다가 밖에는 아무런 지지대도 없는 그야말로 낭떠러지. 티이는 토끼눈으로 카이가 떨어진 곳을 바라봤지만 카이는 늘 있는 일이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착지했다. 만약 기계체조에서 점수를 매겼다면 심사위원들이 기립박수를 칠 법한 완벽한 착지동작이었다. 티이는 이 경악을 금치 못할 행동에 놀라워하며 뛰기 시작하는 카이를 바라보았다.

 

“카이는 엘프잖아. 우리 같은 인간이랑은 비교가 안 돼.”

 

리시타가 불만 섞인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어느새 티이 옆으로 다가와 카이가 뛰어가는 모습을 부러운 모습으로 보던 리시타는, 피오나의 빈정거림에 다시 등을 돌려 원 위치로 돌아왔다.

 

“정 부러우면 너도 여기서 뛰어내려 멋지게 착지해 보던지.”

“누가 부럽대? 그리고 저걸 인간이 어떻게 해? 바보 아냐?”

“한대 더 차줄까?”

 

검은색의 긴 머리카락을 흩뿌리며 매몰차게 등 돌리고 걸어가는 피오나와, 금발의 짧은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뒤따라가는 리시타. 둘의 장난을 지켜보던 무녀는 조용한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글쎄요……. 때때로 너무 많은 장점은 독이 되기도 한답니다.”

“티이 언니. 어서 가요.”

 

아직도 눈물자국이 지워지지 않은 이비가 조르자, 그들은 이미 저 멀리 걸어가 버린 일행을 쫒았다.

 

Lv30 로엔베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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